정화라는 것
정화는 등불과 촛불이다. 해처럼 넓지 않은 대신 가까운 것을 또렷하게 밝힌다.
사람을 가려서 깊게 만난다. 아는 사이가 넓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다.
오래 켜 두려면 기름이 있어야 한다. 혼자 타들어 가지 않게 챙기는 것이 관건이다.
정화는 오행으로 화(火, 퍼뜨리는 힘)에 들고 그중 음(陰)의 자리다. 같은 화의 양간은 병화고, 정화의 네 철에 적은 조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일간과 계절 첫 장에 적었다.
봄(春) — 몸 녹이는 촛불
촛불은 제 몸을 녹여 심지를 적시고, 그 녹인 것으로 다시 탄다.
시작을 잘 만든다. 옮겨 붙일 것을 미리 놔두지 않으면 저 혼자 다 준다.
심지가 짧으면 초가 남아도 꺼진다. 태울 것보다 태울 길이 먼저다.
봄의 정화에게 모자란 것
목갈아 낄 심지가 아쉽다
불은 땔 것이 있어야 산다. 봄에는 그것이 넘쳐서 고르는 일이 남는다.
여름(夏) — 불꽃 없는 숯불
숯불은 불꽃이 없다. 사그라든 것처럼 보이는데 손을 대면 제일 뜨겁다.
제 몫을 다 하고도 티가 안 나는 자리에 자주 선다. 그것이 오래 쌓인다.
재를 안 털면 제 열에 제가 막힌다. 식혀 주는 손이 있어야 오래 간다.
여름의 정화에게 모자란 것
수열을 내릴 물이 있어야 한다
여름 화는 열이 넘쳐 제 빛이 안 보인다. 물이 들어와야 가라앉는다.
가을(秋) — 둘러앉는 모닥불
모닥불은 둘러앉는 사람만큼 넓어진다. 밤이 길어질수록 쓰임이 는다.
둘러앉은 얼굴을 다 밝히면서 정작 자기는 그만큼 줄어든다.
오래 켜려면 땔 것을 미리 쟁여야 한다. 그 준비가 다음 해의 크기다.
가을의 정화에게 모자란 것
목쟁여 둘 땔감을 기다린다
가을 불은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든다. 그러려면 땔 나무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겨울(冬) — 밑이 어두운 등잔불
등잔불은 방을 밝히면서 등잔 밑은 못 밝힌다. 남의 자리부터 환해진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제 기름이 줄기 쉽다.
부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오래 간다. 혼자 타들어 가는 것이 이 철의 위험이다.
겨울의 정화에게 모자란 것
목채워 줄 기름이 모자라다
겨울 불은 꺼지기 쉽다. 물이 아니라 땔 것이 있어야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