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癸水)소리 없이 스미는 이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안쪽까지 들어간다.

계수라는 것

계수는 이슬과 가랑비다.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스며든다.

분위기와 사람의 속을 빨리 읽는다. 말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편이다.

읽은 것을 담아 두다 혼자 무거워진다. 내보내는 통로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계수는 오행으로 수(水, 스며들고 흐르는 힘)에 들고 그중 음(陰)의 자리다. 같은 수의 양간은 임수고, 계수의 네 철에 적은 조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일간과 계절 첫 장에 적었다.

봄(春) — 밤새 맺히는 이슬

인·묘·진 달(입춘~입하 전)에 난 계수
맺히자마자 다 가져다 쓴다.

이슬은 밤새 맺혔다가 아침 볕에 마르고, 그 사이 자라는 것들이 조금씩 받아 간다.

눈치가 빨라 필요한 자리에 먼저 가 있다. 그만큼 자기 몫이 안 남는다.

맺히게 해 주는 것이 있어야 계속 나온다. 새로 채워지는 통로가 필요하다.

봄의 계수에게 모자란 것

금맺히게 할 것이 없다

봄 이슬은 나는 족족 빨려 간다. 맺히게 하는 것이 있어야 끊기지 않는다.

여름(夏) — 퍼붓고 그치는 소나기

사·오·미 달(입하~입추 전)에 난 계수
한 번에 쏟고는 금세 그친다.

소나기는 한 번에 퍼붓고 그친다. 지나간 자리는 반나절이면 도로 마른다.

섬세한 것이 무디게 다뤄지는 자리에 놓이기 쉽다. 그것이 오래 쌓인다.

이어서 오는 물이 있어야 땅이 젖는다. 한 번으로는 아무것도 안 바뀐다.

여름의 계수에게 모자란 것

금서늘한 바위가 아쉽다

여름 이슬은 볕에 마른다. 서늘한 바위에서 물이 나와야 끊기지 않는다.

가을(秋) — 내려앉는 서리

신·유·술 달(입추~입동 전)에 난 계수
같은 물인데 닿으면 마른다.

서리는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이슬과 같은 물인데 닿은 잎은 시든다.

스미던 사람이 이 철에는 가른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같이 있다.

거두게도 하고 죽이게도 한다. 어느 쪽으로 쓸지는 놓인 자리에 달렸다.

가을의 계수에게 모자란 것

이 칸은 비워 두었다

이 칸의 조후는 비워 두었다. 가을 물은 쇠가 밀어 줘서 넘치기도 하고 술월처럼 흙이 이미 센 달도 있어, 한 계절로 묶으면 세 달이 서로 다른 말을 한다. 확인하지 못한 것은 적지 않는다.

겨울(冬) — 여섯 갈래 눈송이

해·자·축 달(입동~입춘 전)에 난 계수
녹아야 스민다.

눈송이는 여섯 갈래로 자라는데, 떨어지며 지나는 공기가 저마다 달라 같은 모양을 찾기 어렵다.

읽어 낸 것을 안에 담아만 두고 내보내지 못하는 때가 올 수 있다.

쌓여 있는 동안은 땅에 한 방울도 안 든다. 볕 한 줌이면 다시 흐른다.

겨울의 계수에게 모자란 것

화녹여 줄 볕을 기다린다

겨울 물은 얼어 스미지 못한다. 해가 들어야 녹는다.

내 여덟 글자는 어느 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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