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토라는 것
기토는 논밭이다. 산처럼 버티지 않고 받아서 키운다.
남의 일에 손이 잘 간다. 도운 자리가 뒤에 자기 자산으로 돌아오는 편이다.
다 받아 주다 보면 정작 자기 밭이 비어 있다. 경계를 그어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토는 오행으로 토(土, 붙잡아 두는 힘)에 들고 그중 음(陰)의 자리다. 같은 토의 양간은 무토고, 기토의 네 철에 적은 조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일간과 계절 첫 장에 적었다.
봄(春) — 손바닥만 한 텃밭
텃밭은 손바닥만 해서 몇 가지밖에 못 심고, 그 몇 가지도 주인이 정한다.
부탁이 몰리는 철이고 그것을 거의 다 받아 주는 편이다.
흙이 데워지지 않으면 심어도 안 난다. 볕을 먼저 받아야 한다.
봄의 기토에게 모자란 것
화흙을 데울 볕이 아쉽다
봄 흙은 아직 차다. 볕이 들어야 씨를 받는다.
여름(夏) — 물 대는 논
논은 물을 대 놓고 있어야 한다. 며칠만 말라도 바닥에 금이 간다.
기르는 일을 계속 맡으면서 채워 달라는 말은 못 한다.
비가 와야 다시 기른다. 받는 법을 익히는 것이 이 철의 숙제다.
여름의 기토에게 모자란 것
수댈 물이 끊겼다
여름 흙은 말라 갈라진다. 물을 받아 두어야 기른다.
가을(秋) — 잎만 보이는 고구마밭
고구마밭은 잎만 보인다. 캐 봐야 그 밑에 무엇이 들었는지 안다.
드러내지 않고 쌓는 쪽이라 일하는 내내 티가 안 난다.
캐고 나면 흙만 남는다. 길러 낸 것은 이미 다 남에게 가 있다.
가을의 기토에게 모자란 것
화볕이 조금 더 있어야 한다
가을 흙은 금을 낳느라 식는다. 볕이 남아야 다음 해를 난다.
겨울(冬) — 들고 옮기는 화분
화분은 들어서 옮길 수 있다. 밖이 얼면 안으로 들어온다.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 기간을 쓸모없음으로 읽고 스스로를 낮게 보기 쉽다.
볕이 드는 창가로 옮기는 것만으로 달라진다. 자리가 곧 조건이다.
겨울의 기토에게 모자란 것
화해가 드는 자리를 기다린다
겨울 흙은 얼어 있다. 해가 들어야 풀린다.